Art & Culture

비비안 사센의 사진 미학

사센의 사진은 함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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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adonna’, Flamboya(2010) © Viviane Sassen. Courtesy of Stevenson, Cape Town and Johannesburg 성별을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나른하게 늘어져 있는 이 사진의 제목은 감기약의 성분으로 쓰이는 약초의 이름 벨라도나와 같다. 벨라도나는 동공을 확장시키고 근육을 이완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독풀로 분류된다.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우리는 그것에 매료되어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대개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위험한 이야기를 숨기고 있다. 비비안 사센의 사진 미학은 그 이야기를 자연스러운, 독특하지만 수용 가능한 유머의 범위에서 표현하는 것에 있다.
 

‘Untitled 061’, RoxaneⅡ(2017)
© Viviane Sassen. Courtesy of Stevenson, Cape Town and Johannesburg


비비안 사센과 그녀의 뮤즈인 록산 단세는 2012년부터 비주얼 저널을 만들기 시작했다. 2017년에 발표한 <RoxaneⅡ>는 마리아 바르나스의 시구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이미지들이다.

루이 비통, 미우미우, 스텔라 맥카트니, 아크네 스튜디오, 아디다스, 엠 미쏘니 등 다양한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온 비비안 사센(Viviane Sassen)은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마흔여섯 살의 여성 사진작가다. 그녀의 전시를 접하지 않더라도 패션계 최전방에서 트렌드를 이끄는 여러 패션 매거진과 패션 브랜드 광고 비주얼에서 먼저 사센이라는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녀만의 시그너처 스타일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는 1990년대 패션 사진계에서 다수의 유명 패션 사진작가가 지향한 글래머러스하거나 사교적인 스타일을 따르지 않았다. 피사체의 날카로운 형태, 강렬한 콘트라스트, 활기찬 색감, 사진 전반을 지배하는 초현실주의적 서사 구조가 단순한 기이함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비비안 사센 사진의 고유한 특징이다. 많은 이가 그녀의 패션 사진을 사랑했고, 그러한 애정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편집이 중요한 패션 매거진의 화보 사진 작업은 그녀에게 테스트장과도 같다. 실험실 같은 텅 빈 캔버스를 마주한 그녀는 이런저런 실험을 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원동력을 얻는다. 특정 상황을 구상하고 설정하지만 촬영 순간에는 다양한 요소가 즉흥적으로 부딪히며 만들어낸 이야기가 사센 스스로에게 내포된 시선과 맞물리며 흥미로운 결과물을 자아낸다.

케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센은 오랫동안 아프리카, 기하학적 도형과 추상화된 몸, 기근과 가난의 전형적 이미지를 의식한 듯한 작품을 발표해왔다. 아프리카의 풍부한 현대적 요소를 투영하기도 했다. 그녀의 서사적 이미지를 마주하면 그녀 사진의 기저에 깔린 그녀 자신 혹은 피사체의 감정에 깊숙이 빠져들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그녀는 복잡한 듯 단순하게, 예상치 못한 순간을 포착하고 보는 이의 판단을 무력하게 만드는 창조성과 실험 정신을 통해 이제 아프리카를 넘어 여성 그리고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대상을 향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비비안 사센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La Lutte #2’, Flamboya(2011) 
© Viviane Sassen. Courtesy of Stevenson, Cape Town and Johannesburg

아프리카 케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센의 사진은 생동감 넘치는 색과 역동적인 기운이 잘 축조된 조각과 건축처럼 조화를 이룬다.

Black Is New White

아트 신에서 아프리카계 작가의 진일보와 여성 작가에 대한 재평가는 여전히 뜨거운 화두다. 그리고 마치 나비효과처럼, 취향의 다각화와 사회적 이슈 등이 맞물리며 그들을 주목하거나 재조명하는 전시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 아프리카계 작가가 그린 아프리카의 모습, 혹은 그들의 문화를 오리고 붙여 만들어낸 작품은 여태껏 미술계를 주도해온, 그리고 지금 주도하고 있는 이들이 찬사를 보내는 작품과는 다른 세상에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것은 아마도 찍히는 대상과 그려지는 대상이 차지하는 피사체로서의 신분 차이 때문이 아닐까. 카메라 렌즈가 세상의 이면, 가려지거나 터부시되는 대상을 향하는 동안, 캔버스 위의 그들을 주목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세상은 그들에게 쉽사리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그들은 우리 주변에 일상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외면이 그들의 삶이었고, 그들의 애환이 해학적 작품과 문화로 승화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아프리카 예술에 매료되는 건 아닐까.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비비안 사센은 케냐에서 의사로 근무하는 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해 두 살 때 이주한 후 온 가족과 함께 3년간 머물렀다. 여섯 살 즈음 학교에 다니기 위해 네덜란드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외려 그곳에서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느꼈다. 그녀는 정서적 발달이 가장 활발한 시기를 아프리카에서 보냈고, 그 어린 시절의 시간이 네덜란드에서 지낸 진짜 삶과 연결되지 못한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움은 충족될 수 없기에 계속해서 무언가를 확대 재생산하는 에너지가 된다. 한때 사센이 가족 앨범을 들여다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을 정도로 아프리카에서 보낸 삶은 그녀의 생에 뚜렷하게 존재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스라한 신기루 같은 것이며, 한때 그녀는 그곳의 일원이었으나 온전한 동지가 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 그리움은 쉽게 채울 수 없는 갈증이었다. 10대가 된 사센이 부모님을 만나러 케냐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어린 시절 썼던 침대에 누워 고요한 어둠 속에 멀리 울려 퍼지는 앵무새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침대에서 이유 모를 눈물을 흘렸어요. 그 소리는 뭔가 고립에 대한 감정을 전해준 것 같아요.” 독보적 시선을 보유한 패션 사진작가로 인정받는 그녀. 사센의 사진은 아프리카에서의 유년 시절에 대한 매혹적인 기억의 조각들을 담고 있다.

그때부터 그녀는 아프리카에서도 네덜란드에서도 자신이 이방인이라고 여기며 살아왔고 46세인 지금은 자신을 하나의 섬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디아스포라는 그녀의 사진에서 밝은 색깔, 화려한 패턴, 강렬한 콘트라스트로 지속적으로 드러난다. 그녀가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의 생태계를 최대한 이해하면서 특히 날카롭게 표현한 실루엣은 한낮 적도의 태양이 만들어낸 것처럼 선명한 시선으로 도드라진다. 드러냄으로써 경계가 흐려지고, 물성이 다른 세계가 공존하는 것이 사센 사진의 전반적인 무드다. 그녀의 카메라 렌즈는 그렇게 관객과 장난치듯 환상적 세계를 만들어낸다.

비비안 사센은 열대 나무‘Flamboyant Tree’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Flamboya> 시리즈(2004~2008)에서 현대 아프리카에 대한 정교한 시각을 만들어냈다. 20대 때 아프리카 곳곳을 돌아다니며 촬영한 사진들은 비록 그녀가 유럽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으나 케냐에서 보낸 유년기가 그녀의 시각적 감수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비주류로 불리는 대상을 우리 일상에 버젓이 세워놓는 비비안 사센의 능력은 다행히도 사진의 이야기(서사)를 들으려는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했고, 특히 이 사진들은 그녀 이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녀가 20대 때 찍은 사진은 2017년 40대의 그녀에게 ‘프릭스 데 롬(Prix de Rome)’에서 수상하는 영예를 안겼다. 아프리카를 다룬 그녀의 작업은 이후 <Parasomnia>(2007~2011), <Etan & Me>(2014) 등의 시리즈로 발전한다.

사센에게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것은 기쁨과 동시에 우울함으로 가득 차게 되는 일이었다.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이지만 동시에 그곳에 완전히 동화될 수는 없다는 생각. 아마도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많은 아프리카인과 난민을 비롯한 디아스포라들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비비안 사센의 <Parasomnia> 시리즈는 약 2년 동안 서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에서 겪은 체험을 투영한다. 당시 그녀의 사진은 세상이 얼마나 이상하리만치 생동감에 차 있으며, 애타는 슬픔을 품고 있는지를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Flamboya> 시리즈에서 각자의 역동성을 뿜어내던 피사체들이 이 시리즈에서는 바다에 떠밀려 온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있거나 고개를 푹 떨구고 쓰러진 듯 누워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정적인 가운데 어떤 상황에 대항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자신의 피부색과 대비되어 더욱 두드러지는 색상의 옷을 입거나 <La Lutte #2>(2011), 마치 붉은 무덤에서 다시 환생한 듯한 감정을 전달하기도 한다(<Nadir>(2007)).

그녀는 이즈음 자신의 작품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다. “믿음은 환상이다. 사진 매체에 대한 형식주의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 작품에 보이는 불분명한 얼굴은 전통적 방식으로 빛과 그림자놀이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tan & Me> 시리즈에서 그 놀이는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대부분 혹은 반쯤 가려진 시선에 내포된 사랑과 상실의 불분명한 얼굴을 만날 수 있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자신의 그림자를 보는 일인 것처럼. 반대로 내 그림자에서 상대를 보는 것처럼.”

‘Vesuvio’, Of Mud and Lotus(2017)
© Viviane Sassen. Courtesy of Stevenson, Cape Town and Johannesburg


진흙과 연꽃이란 시리즈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센은 이 시리즈를 통해 전통적으로 여성적이라 일컬어지는 요소들에 대해 생산적이고 풍요로운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Brighten the Corner


그녀의 사진은 특정한 제품이나 인물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종종 표정이 불분명하거나 머리가 없거나 반신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사센의 피사체는 2차원의 세상에서 때로는 스스로 만들어낸 그래픽적 형상, 혹은 움직이는 조각의 모습으로 발전한다. 그녀만의 대담하고 독특한 접근 방식은 패션과 미술 사이의 경계선에 놓여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트렌드를 좇는 패션의 일시적인 성향은 그녀가 그 안에서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 놀이터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실험하고, 실패하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실험은 반드시 어떤 형태의 결과물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진정으로 창조적일 수 있는 자유를 증명하기 위해서기 때문이다. 사센의 사진 한 컷에 담긴 각기 다른 요소는 서로 간에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교감이나 상호작용을 이루고, 그 상호작용은 이미지의 민첩성과 물리적 완성도로 드러난다. 화려한 색, 피사체의 구상적 형태감, 색색의 파우더, 페인트 등은 그녀가 일종의 상호작용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대표적 도구다.

그녀의 사진은 다양하고 엄격한 설정을 통해 얻어진 것 같지만 대개 백지상태로 접근해 자유로운 흐름에 의해 획득한 결과물이다. 막연한 아이디어, 거기서부터 실험이 시작되고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탐색하고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사진은 진정한 매력을 발산한다. 살다 보면 때로 일하는 방식과 시간을 투자하는 데 제약이 있을 수 있는데, 사센은 이러한 제약을 또 다른 표현의 형태로 사용하는 법을 안다. 현재 그녀는 암스테르담 집에 머물며 자전거로 5분 거리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작업한다. 그녀의 전작들이 아프리카 여행에서 영감을 얻었다면, 이후 정착 생활을 하며 더 이상 여행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예술적 실험을 하고 싶었던 그녀는 콜라주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하여 나온 시리즈가 <Of Mud and Lotus>(2017)와 <Roxane II>(2017)다. 국경을 넘나들며 피사체를 찾아 헤매는 대신 현상소에 가서 사진을 재배열하거나 콜라주하고 인화된 사진 위에 페인팅하기 시작한 것. 이러한 탐험은 그녀의 작품에 새로운 아이코닉한 신체적 형상을 만들어냈고 이는 그녀의 뮤즈 록산 단세(Roxane Danset)와 함께하는 프로젝트 <Roxane II>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동안 터부시돼온 것을 밝은 햇살 아래 산뜻하게 페인팅하고, 의뭉스러운 표정과 몸짓의 조화로 담아낸사진들이다. 사센이 즐겨 사용하는 예술적 도구인 유머와 기호의 전환을 록산은 거침없고 가감 없이 표현해준다. 사센은 <Roxane II> 시리즈에서 내적 히스토리를 내면화한 환상적 세계, 그녀만의 독특한 초현실적 표현을 통해 규정화된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 모습은 마치 아이가 세상을 보는 시선처럼 다가온다. 여성 화자로서 여성 피사체를 다루는 그녀의 방식도 이와 같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온몸에 물감을 찰흙처럼 발라 조각 형태로 만든 임산부의 몸은 경쾌한분위기로 재탄생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뭉그러진 인간 군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의 최근 작업에서는 또 다른 발전적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양상은 지난해 헵워스 웨이크필드 갤러리에서 진행한 전시 ‘Hot Mirror’의 일부로 상영된 <Totem>이라는 몰입형 영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센이 찍은 사진에서 선별해 초현실주의 기법으로 만든 이 영상은 시적 이미지로 가득하다. 구상적 형태로 드러난 인간 형상과 그림자는 분할 화면이나 하나로 이어진 화면에 어떤 상징물처럼 등장한다. 의미가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진을 좋아한다고 고백한 바 있는 비비안 사센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떨 때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보면 사진을 읽어내는 것이 훨씬 더 쉽다고 깨닫게 됩니다. 나는 항상 나 자신에 대해 의심하지요. 모순된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나는 명확하고 분명한 상황보다는 내가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더 끌립니다.”

비비안 사센의 사진은 함정 같다.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우리는 그것에 매료되어 더 가까이에서 보기를 원한다. 그러나 대개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더 폭력적인 이야기를 숨기고 있다. 이 지점에서 미학을 넘어 사회를 반영하는 사센의 의도가 무의식적으로 드러난다. 그녀의 의도는 작위적인 형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방식 혹은 독특하지만 수용 가능한 유머 정도의 범위에서 표현된다. 그녀가 꺼내놓은 사진, 그 이미지가 들려주는 믿기 어려운 상황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생하는 모순된 이야기, 상상할 수 없는 일화를 상상해보라. 결국 그녀 작품의 영감을 이루는 것은 일상의 이야기가 전부인 셈이다. 우리가 그녀의 사진에 감응하는 이유도 결국 이 세상과 역사를 구성하는 우리 모두가 모순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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