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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래버레이션, 우리 사이의 어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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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스X반 고흐 뮤지엄의 컬래버레이션 캠페인 화보.

고등학교 2~3학년 동안 같은 분이 담임 선생님이셨다. 유독 유대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선생 님은 매달 첫날이면 자신이 직접 만든 랜덤 프로그램으로 그달의 짝꿍을 정해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에 그렇게 심장이 요동치던 순간도 없었다. 한눈에 다 들어오는 작은 교실에서 매일같이 보는 친구들이지만 특정 친구와 짝을 이룬다는 것은 굉장히 가슴 떨리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짝꿍이란 하나씩 나눠 낀 이어폰 너머로 흐르는 음악 취향이 비슷해야 하고, 서로 번갈아 졸면서 상대방을 깨워줄 요령도 필요하다. 심지어 배가 고픈 타이밍도 같을 정도로. 그렇게 매달 짝꿍이라는 명목 아래 우리 반 친구들은 서로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 세상은 여전히 ‘짝’ 짓는 일에 미쳐 있다. 생면부지인 남녀를 한 집에 몰아넣고 사랑을 점치는가 하면, 부모가 직접 나서 자식에게 짝을 강요하는 시대착오적 프로그램이 TV 채널마다 즐비하다. 메뉴판의 커플 세트 파트에만 알짜배기 베스트 메뉴를 몰아넣은 식당을 보면 어딘가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패션업계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 이리저리 둘러봐도 ‘컬 래버레이션’이라는 이름의 대홍수가 세상을 삼켜버린 듯하고, 연거푸 숨을 내쉬며 헤엄쳐봐도 곳곳이 컬래버레이션투성이다. 비난의 의도는 없으나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특별함을 선사하기 위해 작정하고 만든 서프라이즈 이벤트가 컬래버레이션인데, 어째 너무 많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별의별 기념일을 하나하나 챙기다 보면 언뜻 느끼게 되는 일종의 권태 같은 것일까. 마치 두더지 게임처럼 조그만 틈만 나면 튀어나오는 잦은 협업 소식에, 그간 흥겨운 기분으로 마주 쳐대던 손바닥의 감각이 무뎌진다. 이따금씩 루이 비통과 슈프림이라는 의외의 만남 등 놀라운 소식이 들려오기도 하지만, 그 즐거움을 몸소 느끼기도 전에 많은 제품이 중고 시장의 매물 리스트에 도배되면서 ‘값’이 ‘가치’를 가리고 만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컬래버레이션을 의미하는 곱하기 부호가 이제는 곱절 이상 뛰어오르는 가격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럭셔리와 스트리트 브랜드에서 각각 최고의 존재라고 할 수 있는 루이 비통과 슈프림의 궁극적 목표마저 사람들이 미처 깨닫기도 전에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최근에는 여러 브랜드가 컬래버레이션이라는 폭풍에 휩쓸려 길을 잃은 난파선처럼 바다를 표류 하는 와중에, 조금 색다른 방안을 찾아 제시하는 케이스가 눈에 띈다. 일종의 구조 사인을 보내는 것. 여기저기에서 모두가 짝 찾기에 열을 올리는 동안, 그들은 시야를 넓히며 바람의 방향과 파도의 물결을 파악했다. 그러곤 단순한 두 브랜드의 합이 아닌 각 브랜드가 지닌 문화, 예술, 취향과 손을 잡았다. 헬무트 랭의 경우, 택시라는 일상의 소소한 주제를 선택해 뉴욕, 파리, 홍콩, 런던, 도쿄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의 택시 문화를 반영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 컬렉션은 화려한 디테일 이나 값비싼 소재 등은 눈에 띄지 않지만 거리 어디서든 보고 접할 수 있는 택시라는 생활 속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각 도시를 연상케 하는 고유의 컬러가 등장하고 나이가 많은 택시 드라 이버가 컬렉션 룩을 입은 채 운전대를 잡은 컬렉션 광고 캠페인은 어떠한 패션 화보보다 강렬히 뇌리를 스친다.

 

아래 슬라이드를 넘겨보라

오프화이트와 반스는 미술관에서나 볼 법한 세계적인 명화를 티셔츠와 스니커즈에 새겨 넣어 기존 브랜드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새로움을 더했다. 그동안 오프화이트는 월간 행사로 느껴질 정도로 숱한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였지만, 사실 〈모나리자〉가 프린트된 티셔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물며 컬렉션 라인도 아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출시되는 캡슐 컬렉션이라는 점에서 〈모나리 자〉의 등장은 나이키 운동화 이상의 새로움을 전하려는 오프화이트의 노력을 보여준다. 반 고흐 뮤지엄과 만난 반스는 브랜드의 기존 성격을 완전히 뒤집으며 브랜드의 가치를 새로 썼다. 반스 스니커즈의 발등 위에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로 꼽히는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 <자화상> 같은 위대한 작품을 섬세하게 새긴 것이다. 이 컬래버레이션의 수익금 일부는 다음 세대를 위해 미술관을 보존하는 데 쓰일 예정이라고 하니, 그 의미가 더욱 깊다. 슈프림 역시 그동안 함께한 브랜드를 나열하려면 끝이 없을 정도로 패션계에서 우정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최근 이 브랜드는 현대 미술가 마이크 켈리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운 컬렉션을 선보였다. 마이크 켈리는 무게감 있는 사회 문제를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동화적으로 풀어내며 현대 미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아티스트다. 슈프림과 마이크 켈리의 만남은 그 가치를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이며, 이제 사람들은 미술관이 아닌 슈프림 매장 앞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 긴 줄을 이룬다.

요즘 시대는 패션 브랜드 간의 조합만이 모범 답안이라고 할 수 없다. 예술과 문화 간은 물론이고, 카니예 웨스트가 미국 포르노 사이트 ‘폰허브’를 패션으로 풀어낸 작업물을 공개한 것처럼 음지와 양지 사이에 새로운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 짝을 찾기 위해 긴 시간 동안 표류하던 오랜 역사와 문화의 브랜드들이 궁극의 파트너를 만난 셈이다. 마치 컬래버레이션 홍수에 잠겨버린 세상 위로 솟구쳐 올라 새로운 땅을 찾은 것처럼 말이다. 우주의 중력처럼,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며 작용하는 기막힌 시너지를 기대해본다. 본래 패션이란 것이 알다가도 모를 예측 불허의 맹랑한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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