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me

柔道 유도

솟구치는 힘의 고요함. 떨어지는 선의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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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柔道Judo #07> (2016), 140×93cm
<Untitled - Ringo #02> ( 2018), 120×80cm
<柔道Judo #01> (2018), 140×93cm
<Away #31> (2016), 120×80cm
<Flowers - Jeju #22> (2017), 120×80cm

동백꽃 붉은 가지에 남풍이 와 부딪는 모양이 온유하다. 음력 12월을 지나는 계절이 서귀포에서 짬을 내어 포즈를 고치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은 눈이 더 올 거라고 나는 바라듯 믿는다.

눈이 쌓이고, 그 위로 떨어지는 것은 붉은 동백꽃이거나 동백꽃의 붉음이거나. 그놈은 송이가 하도 커서 귀를 기울이면 소리도 들릴 것 같다. ‘털썩’쯤 될까. 동백은 장미가 하듯이 꽃잎을 하나하나 부수어 해체하지 않는다. 우두커니 참다가 송이째 밀어버린다. 그런 이치로 장미는 흩어지고 백합은 누그러들고 동백은 떨어진다.

털썩. 나는 그때 바닥이 눈으로 덮였길 바라는 감상적인 손님이다. 서귀포 중산간, 의귀에서 신흥을 에두르는 감귤밭에는 동백으로 울타리를 친 곳이 줄줄이다. 거기서 몇십 년째 감귤 농사를 짓는 김계림 씨에게 언제 또 눈이 올지 물었다가 이런 대답을 들었다. “서귀포에 눈이 쌓이도록 오는 경우는 드물지요. 그냥 뿌리고 마니까요. 며칠을 와도 내내 뿌리기만 하지요.” 쌓이는 법이 없다, 그러니 너의 유희는 수법에 불과하다, 알아들으면서도 마음은 마음대로 완강하다. 눈이 온다면, 바닥이 되어준다면, 받아준다면, 동백은 그리로 떨어지리라. 자연 스스로 정한 미감이 선연하리라. 나는 그걸 보려고 꿈꾼다. 그러다 ‘만나지는’ 시간을 믿는다. 

두 해 전이었나. 겨울이었는데, 나는 한국체육대학교 유도 훈련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다. 유도는 어디까지나 상대가 있어야 하는지라, 고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실업팀 형들이든 한데 모여 체격이 비슷해 보이는 자의 도복을 움켜쥐는 식으로 훈련한다. 시합은 아니니까 어떤 동작은 장난 같고 어떤 동작은 지나쳐 보이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땀이 소나기다. 대회가 코앞인지라 감량을 거듭한 얼굴들은 피골이 상접해 안쓰럽기도, 날렵하기도, 알 수 없기도 하다. 나는 도서관에서보다 더 조심하며 선수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리듬이 생겼다. 쿵, 바닥을 울리는 소리. 한쪽은 메치고 한쪽은 떨어지는 사이. ‘너와 나 사이에 물이 흐르고 있구나’ 같은 가사의 여운.

내가 유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메치기를 당한 자가 영문을 모르고 어디라도 보겠다며 동공을 번뜩일 때다. 나는 떨어졌나? 그러므로 패했나? 떨어지는 동안 나는 어떻게든 몸을 한 번쯤은 비틀었던가. 바닥이 거울이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텐데, 지금 바닥은 진짜 거울이라서 산산이 부서진 몸을 비출 뿐이구나. 언제 일어나야 할까. 하나 둘 셋이면 족할까. 어떤 표정이어야 할까. 모든 것을 망친 자에게 허락된 표정도 있을까. 나는 핀셋으로 그 순간을 고르려 애쓴다. 네가 떨어진 자리는 붉지, 소리는 아름다웠지. 나는 대답해준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그 후>의 첫 장면은 간밤에 머리맡으로 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듯한 남자가 눈을 뜨는 아침이다. 나는 그 소설을 끝까지 읽은 적이 없는데, 첫 장면으로부터 자꾸 다른 생각, 다른 이미지를 꿈꾸게 되었던 것이다. 유도 선수였던 건축가 김대균은 내 얘기를 듣고, 여주 신륵사에 있는 도의선사 부도 얘기를 들려주었다. “거기에 눈이 오는 거야.” 그 후 나는 눈 내리는 계절을 내내 기다리고 있다. 부도가 있는 자리는 아마도 네모나겠지. 기력, 예의, 극기, 공정, 준법, 거기에 서 있으려거든 어디까지나 예를 갖춰야 하겠지. 도복의 절개는 무엇에 비할까. 내 수트는 거기서 온당할까. 아직은 모르는 일. 다만 유도장에서 동백꽃을, 동백꽃 앞에서 유도장을 떠올리는 것을 숫제 버릇 삼았으니, 사물과 풍경 앞에서, 여기와 거기, 맞서며 매일의 숙제로 안다

writer & phorographer : JANG WOO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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