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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메이앙 덕분에 살바토레 페라가모 남성복은 남성 패션의 체스판에서 전략적 위치를 굳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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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력서가 그를 대신 설명해준다. 차라리 잘된 일이 다. 기욤 메이앙은 요즘 정말 흔치 않은 ‘로 프로필(Low Profile)’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그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그가 럭셔리 하우스 몇 곳을 거치며 쌓은 경력을 고려해보면 제대로 대우해주어야 할것이다. 37세의 순수한 파리지앵인 그는 랑방 남성복에서 8년간 착실하게 경력을 쌓았다. 루카스 오센드리버의 가장 가까운 후임이자 오른팔로 랑방 남성복을 디자인했다. 랑방 시절 그는 남성복에 관한 충분한 스킬을 마스터하며 환상적이고도 유익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에는 스테 파노 필라티가 활약하던 전성기 시절 생 로랑에서 일했으며 더 젊었을 때는 루이 비통에서 인턴십을 하며 디자이너 로서의 재능과 기술을 갈고닦았다. 이만하면 전력이 화려한 셈이다. 덕분에 오늘날 모두가 탐내는 자리인 살바토레 페라가모 남성복의 헤드 디자이너(Head Designer)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 그룹의 남성복 파트에 활기를 불어넣는, 쉽지만은 않은 임무를 짊어지고 말이다. 그와의 인터뷰를 시작해보자.

 

 

 

피렌체에 위치한 살바토레 페라가모 남성복 스튜디오에서 만난 기욤 메이앙.

L’OFFICIEL HOMMES(이하 LH) 젊은 나이에 패션계 에서 일하기 시작한 셈이다. 당신의 시작에 대해 말해달라.
GUILLAUME MEILLAND(이하 GM) 2003년에 파리 에스모드를 졸업했지만 성실한 학생과는 거리가 먼 편이 었다. 그렇지만 실제 디자이너의 생활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 전혀 차원이 다르며 더욱 흥분되는 일이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실재’의 세계와 실전 경험이 내게는 더 와 닿았 다. 흡사 20세기 초처럼 급변하는 오늘날, 루이 비통 같은 브랜드에서 경력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너무나도 특별한 기회였다. 당연히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하던 22세의 인턴이 대규모 럭셔리 하우스의 전략적 문제를 피부로 느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창의적 부분에서는 나름대로할 바를 다했다.

LH 어떻게 그렇게 일찍 패션계에 몸담을 수 있었나?
GM 패션이 나를 찾아왔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가족이 직물 도매상 일을 했고, 집안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패션이 녹아들어 있었다. 나는 금세 남성복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남성복의 완고한 코드는 내게 편안한 틀을 제공하 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2000년대 초 남성복 마켓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에디 슬리먼, 라프 시몬스, 톰 포드 같은 디자이너의 활약으로 토양이 마련되었다.

LH 살바토레 페라가모에 합류하면서 나름 크게 도약했다.
GM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옮긴 것, 스튜디오와 패션쇼 백스테이지에서 일하다가 헤드 디자이너로서 런웨이 피날레에 등장하는 것 등은 확실히 내게 큰 도전이었다. 작업 방식도 매우 다르다. 살바토레 페라가모 같은 브랜드에서는 내가 과거에 한동안 일했던 회사보다 훨씬 큰 규모로 일이 이루어진다. 이탈리아로 거주지를 옮긴 것도 어떻게 보면 관련 산업의 한복판으로 옮김을 의미한다. 엄청난 일이 지만 긍정적인 동기 부여다.

LH 살바토레 페라가모 남성복 헤드 디자이너로서 목표는 무엇인가?
GM 브랜드 전체에 탄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명품 시장에서 브랜드에 걸맞은 전략적 자리를 다시 차지하도록 하고 싶다. 근본적 역동성을 불어넣고, 유럽부터 시작해 시장을 하나씩 다시 정복해나가고자 한다.
회사 경영진이 전략을 세우고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따르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있으니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한다. 속도가 필수다.

LH 브랜드를 새롭게 하는 것이 급선무인가?
GM 어쨌거나 다시 한 번 브랜드의 강렬한 정체성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 명확하고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남성복에서는 말이다. 남자의 소비 습관 자체가 많이 변했다. 요즘 남자는 자신이 무엇을 찾는지, 또어디서 그걸 찾아낼지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그런 남자의 필요와 기대에 정밀하고 정확하게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롭지만 동시에 어떤 것도 우연에 맡길 수없으니 굉장히 역설적인 듯 보이지만 바로 그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브랜드 내부적으로 디자인 부서는 물론이고 경영 팀에서도 일신의 의지가 확실하다.

 

아래 슬라이드를 넘겨보라

LH 살바토레 페라가모에서 당신의 위치는?
GM 나는 아티스틱 디렉터가 아니라 헤드 디자이너다. 다시 말해 계속 크리에이티브한 역할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가 브랜드의 이미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을 담당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패션쇼가 그렇 다. 따라서 브랜드 전체에 대한 관점을 표명하고 나눌 수있어야 한다.

LH 말이 나와서 말인데, 크리에이션에 대한 당신의 계획은 무엇인가?
GM 창립자 페라가모는 내게 백지 수표를 남겼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전통적인 가족적 기업으로 창립자의 기억이 강력하게 남아 있다. 그의 개성이 시대를 뛰어넘어 전해져 내려온다. 살바토레 페라가모 남성 기성복의 역사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살바토레 페라가모에서 나의 첫 컬렉션은 당연히 창립자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 다. 특히 그가 뉴욕에 거주하던 시절의 특징을 많이 살렸 다. 전반적인 톤은 미국 빈티지 무드에서 영감을 받았다.

LH 빈티지가 당신의 첫 번째 계획에 속하는가?
GM 맞다. 10대 시절에는 게리솔(Guerrisol)이란 브랜드의 옷을 즐겨 입었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밀리 터리 가죽 재킷 등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유행을 타지 않아서 지금도 아끼는 옷이다. 남자라면 단번에 스타일이 분명해 보이는 아이코닉한 아이템을 몇 가지 정도 옷장에 갖춰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LH 당신이 브랜드에 가져다줄 수 있는 강점은 무엇인가?
GM 가장 먼저, 나는 볼륨에 대한 열정이 크다. 의상의 구조와 비율은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거칠고 뻣뻣한 소재와 유연하고 매끄러운 라인을 섞기 좋아한다. 그런 조합은 항상 성공한다. 그렇게 하면 옷을 입을 때 ‘거침없다’는 느낌이 난다. 나는 랑방에서 그 효과를 내는 법을 배웠다. 장인 기술에 대한 관심도 나의 장점이 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로 간 것은 내게 더할 나위 없이 긍정적인 일이다. 살바토레 페라가모 아카이브의 옛 자료를 보면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전통 기술과 수작업을 통해 얼마나 제품에 ‘센슈얼리티’를 잘 부여하는 브랜드인지 알 수있다. ‘착용감’이라는 개념도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는 내게 매우 필수적 요소다. 편안한 착용감이 스타일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옷은 그 어떠한 순간에도 거북해서는 안 된다. 결국 편안함이 가장 현대적 가치다.

LH 어떻게 수공업 기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 아로의 이주를 결정했는가?
GM 이전부터 이탈리아 수공업 산업과 장인 기술에 대해잘 알고 있었지만 현지에서 직접 살면서 현실을 경험하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도 없다. 내 모든 것을 건 일생일대의 선택이었다. 내 아내와 아이들도 이 모험에 동참시켰으니더 그렇다.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니 최대한 누릴 수있어야 한다. 파리에서 잠시 떨어져 지내는 동안 내 영감에 새로운 기운이 가득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디자인 작업에 최대한 집중할 생각이다.

LH 자신의 작업에만 집중하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는지 알 수 없지 않은가?
GM 나는 천성적으로 독립적인 성향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는 편이다. 늘 이런 식으로 잘해왔다. 남이 하는 일에 완전히 눈 감고 살지는 않지만 나만의 언어를 직관적으로 개발해내는 것을 더 좋아 한다. 그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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