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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지의 색다른 편집 매장

패션이라 불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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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패션에 무지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도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이른바 세계 4대 패션 위크가 열리는 곳이니까. 기억 한편에 자리한 노랫말이나 하다못해 티셔츠 가슴팍에 새겨진 문구로라도 접해봤을 법한 마성의 도시들이다. 쇼가 열리는 시기에는 전 세계 셀러브리티와 패션 업계 종사자가 저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클랙슨 소리를 비트 삼아 거리에 모습을 드러낸다.

각 도시의 철학과 색이 담긴 런웨이 위로 미래에서 온 트렌드가 피어나는 순간, 예측은 사실이 되고 사실은 이야기가 되어 지구를 뒤흔든다. 이처럼 패션이라는 말의 또 다른 부제가 되어버린 패션 위크가 트렌드를 대변하는 동안, 어디선가 또 다른 현장은 그에 못지않은 뜨거운 분위기에 휩싸인다. 아직은 패션이라는 말과 쉽사리 매치되지 않는 곳, 바로 패션 마이너 국가의 편집매장이다. 독일이나 러시아와 관련해 무조건 맥주나 보드카를 떠올린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패션 위크가 트렌드를 제시한다면, 이들 국가는 트렌드를 증명한다.

RUSSIA, KM20


보편적으로 지금까지 러시아라고 하면 추위와 보드카, 그리고 계속 인형이 튀어나오는 마트료시카 정도였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 독일 패션 매거진 & 채널 <하이스노바이어티>가 선정한 전 세계 패션 스토어 순위에서 1위에 오른 ‘KM20’은 새로워진 러시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KM20은 오프화이트와의 단독 캡슐 컬렉션 론칭으로 세계적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드리스 반 노튼, 자크 뮈스, 고샤 루브친스키 등 세계적 디자이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건축가와 컬래버레이션해 완성된 KM20의 매장은 설치 미술 작품을 연상시킨다. 단순한 의류 매장이 아닌 하나의 전시 공간으로 완성한 것이다. 러시아 패션 분야의 행보 역시 예사롭지 않다. 베트멍, 오프화이트, 라프 시몬스 등 트렌드 최전선에 자리한 브랜드와 활발히 협업하는 것은 물론이고 <032C>, <아이디어 북스> 등 문화와 예술 활동을 펼치는 콘텐츠 매체와도 거침없이 교류한다. 국가 특유의 분위기답게, 정해진 틀이나 경계선을 모르는 러시아의 화끈한 액션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부 스토어.

DEUTSCHLAND, VOO STORE


독일 베를린에서는 ‘부 스토어’가 눈길을 끈다. “베를린을 여행할때 베를린 장벽은 못 가도 부 스토어는 꼭 들러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미 명소로 자리 잡은 곳이다. 시내 중심이 아닌 외국인 이민자 지역에 위치한 만큼 주변은 복잡하고 부산한 편이다. 거리를 헤매다 보면 불현듯 어느 아틀리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모습의 아치형 입구를 마주하게 되는데, 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금방 모델들이 걸어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법한 모던한 정원 뒤로는 아크네 스튜디오, 프라다, J.W. 앤더슨, 질 샌더 등 각양각색의 브랜드가 쏟아져 나온다. 이것은 마치 각국의 식당이 줄지어 자리 잡고 있는 문 밖의 거리를 연상 시킨다. 다양한 것들이 어느 하나 어색함 없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 말이다. 특히 부 스토어는 데일리 무드를 연출하는 스킬이 능수능란하다. 부 스토어의 셀렉션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옷장처럼 편안하고 실용적이다. 런웨이에 등장하는 룩이 다소 과하거나 생소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전환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부 스토어가 제시하는 실용주의적 하이패션은 나이키나 뉴발란스 같은 스포츠웨어 셀렉션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트렌드를 넘어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은 스포티즘을 감안해 럭셔리 브랜드와 스포츠웨어를 최적의 온도로 조화해 표현해낸다. 머릿속으로는 이것저것 많은 것을 그려 봐도 막상 시도하기 힘들었던 사람이라면 부 스토어가 전개하는 브랜드를 훑는 것만으로도 스타일링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 다. 이쯤 되면 부 스토어가 시내가 아닌 외국인 이민자 지역에 위치한 이유를 자연스레 유추할 수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 으나 가치와 색이 서로 다른 다양한 브랜드를 하나의 스타일로 선보이는 것, 그리고 완벽한 조화를 이뤄내는 것. 그것이 바로 베를 린, 그리고 부 스토어가 새롭게 역사를 쌓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캐나타 토론토에 위치한 헤이븐.

CANADA, HAVEN


캐나다에 있는 ‘헤이븐’은 전 세계 힙스터를 줄 서게 만드는 숍으로 유명하다. 주로 네이버후드, 더블 탭스, 컬러 등 마니아층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브랜드를 선보인다. 헤이븐 토론토 매장과 밴쿠버 매장 두 곳 모두 럭셔리 하이패션보다는 스트리트 무드에 초점을 맞추며 다양한 스트리트 브랜드와 스니커즈 라인을 갖추고 있다. 헤이븐의 대표 아이템은 런웨이에서 공개된 직후 전 세계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스니커즈다. 그래서일까. 헤이븐 앞은 성취감에 젖어 한껏 독이 오른 소년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트레 비앙의 2018년 봄/여름 컬렉션 룩 북.

SWEDEN, TRES BIEN


스웨덴에도 부 스토어에 못지않은 곳이 있다. 스웨덴 남쪽 끝자 락에 위치한 ‘트레 비앙’이 그 주인공. 오로지 남성 라인만 선보이는 만큼 스타일은 다소 투박한 편이다. 아무리 난해하고 소화하기 힘든 브랜드라도 이곳의 문턱을 넘는 순간 단정함을 넘어 친근한 스타일로 새롭게 태어난다. 그동안 선택을 망설이던 럭셔리 브랜드와 하이패션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매장의 이름을 내건 독자적 브랜드까지 전개하고 있다. 브랜드 트레 비앙은 매장에서 선보이는 다양한 브랜드의 축약본이라고 할수 있을 만큼 특유의 뚜렷한 개성을 어김없이 발휘한다. 트레 비앙은 스웨덴 끝자락에서 패션을 향해 불을 밝히는 등대 같은 곳이다.

디자이너의 노고와 열정을 담은 컬렉션을 보기 위해 런웨이 앞에 앉아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은 그만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이제막 오븐에서 나온 뜨겁고 맛있는 크루아상처럼 느껴질지도 모르 겠다. 하지만 4대 패션 위크만으로 패션을 논할 수는 없다. 세상의 많은 국가와 도시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패션을 외치고 있다.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자. 모델의 워킹 속도가 아닌 온전히 자신 만의 발걸음에 맞춰 패션을 느껴보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매장에서 아이템을 구입해 바로 집으로 가져올 수도 있으니 이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그런 의미로 오늘도 지구본을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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