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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ITY AMERICANO

어쩌면 가장 미국스러운 곳, 라스베이거스. 정열의 도시는 잠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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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미국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살면서 갈 기회도 많았고, 형제가 살고 있는 마당에 가지 않을 이유를 찾는 것이 더 어려웠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다고나 할까.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가까운 일본이나 동남아로 여행 가는 것이 편했고, 주머니 사정과 시간이 허락된다면 유럽을 택하는 쪽이었다. 어쩌면 대중문화를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를 너무 많이 접했기에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열 시간이 넘는 비행 동안 처음 가보는 도시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머릿속에서 자리싸움을 했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슬롯머신 앞에 앉은 사람들과 네온사인, 그저 화려한 밤거리의 모습만을 연상시키던 라스베이거스는 예상을 뒤엎는 색다른 매력으로 가득했다.

도시의 가장 유명한 포토 스폿 중 하나인 라스베이거스 웰컴 사인.

FOR EPICURE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높은 수준의 파인다이닝과 다양한 음식을 비교적 저렴하게 접할 수 있다. 주요 관광 상품인 카지노를 이용하는 관광객의 허기를 달래줄 뷔페가 발달했을 뿐 아니라 ‘기 사부아’, ‘조엘 로부숑’, ‘앙드레 로샤’ 등 미쉐린 스타 셰프의 레스토랑도 대거 모여 있다. 시저스 팰리스에 위치한 기 사부아는 다음에 기회가 생긴다면 꼭 예약해 가보고 싶은 레스토랑. 이번에는 하루 날을 잡고 레스토랑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여행객과 지역 주민에게 라스베이거스의 파인다이닝을 소개하는 ‘립 스매킹 푸디 투어’는 <라스베이거스 리뷰 저널>에서 ‘베스트 투어’, ‘베스트 파인다이닝’, 
‘베스트 브런치’로 선정된 것을 비롯해 다수의 상을 받은 검증된 미식 투어다. 라스베이거스 파인다이닝의 매혹적 이야기를 들려줄 요리 전문가가 메인 스트립 또는 다운타운에 위치한 레스토랑들 중 최대 다섯 곳으로 안내한다. 각 레스토랑은 투어 참석자가 기다릴 필요 없이 미리 준비한 서너 가지의 특선 요리를 제공한다. 미쉐린 스타 셰프 마이클 미나의 ‘바르도 브라스리’, 숀 매클레인의 ‘세이지’, ‘쿠치나 바이 볼프강 퍽’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미식의 세계를 라스베이거스에서 경험할 수 있다.

립 스매킹 푸디 투어’ 코스 중 셰프 숀 매클레인의 레스토랑 ‘세이지’의 칵테일.

GRAND CANYON


‘라스베이거스’ 하면 많은 사람이 꺼지지 않는 인공적 불빛으로 가득한 밤의 도시를 떠올리지만 사실 낮에 즐길 거리도 가득한 도시이기 때문에 24시간 심심할 틈이 없다. 특히 시 외곽에 위치한 볼더시티 헬기장으로 가면 압도적 경관의 그랜드 캐니언을 내려다볼 수 있는 헬리콥터 투어가 가능하다. 새벽녘 어둑어둑한 시내를 출발해 사막의 일출을 감상하다 보면 헬기장에 도착한다. 관광 목적으로 만든 헬리콥터는 뒷자리에 앉아도 전경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파일럿의 설명을 들으며 깊이 약 1500m에 이르는 협곡 위를 날다 보면 어느새 형언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인간의 존재가 한없이 가볍게 느껴지고 자연의 위대함에 위안받는다고나 할까. 단어 그대로 ‘Mother Nature’를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클럽 하우스를 연상시키는 코즈모폴리탄 호텔 내의 패션 리테일 숍 ‘스티치드’.

DOWNTOWN STREET


밤보다 낮이 매력적인 곳은 또 있다. ‘올드 타운’이라는 이름의 구시가지는 길을 따라 늘어선 낮은 건물들, 한데 모여 있는 아기자기한 상점과 레스토랑이 사막이나 메인 스트립과는 또 다른 여유로움을 자아낸다. 동행한 사람들 모두 올드 타운의 분위기를 가장 좋아했다. 어찌 보면 ‘인스타 감성’이 충만한 올드 타운의 골목골목은 상상 속의 미국과 꼭 닮았다. 길을 걷다가 프리몬트 스트리트에 들러 집라인 ‘슬롯질라’를 타고,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한낮의 더위를 떨쳐버렸다. 전형적인 사막 기후를 보이는 라스베이거스는 낮에는 뜨겁고 극심하게 건조한 데 반해 해가 지면 찬 바람이 분다. 도착한 날 건조한 날씨 때문에 코피가 흐를 정도였으니 이 도시가 어떤 지역에 세워졌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법했다.

‘립 스매킹 푸디 투어’ 코스 중 ‘바르도 브라스리’의 애피타이저.

UNIQUE ACTIVITIES


이 외에도 라스베이거스는 40개가 넘는 골프 클럽이 들어선 골퍼의 천국이다. 도심에서 색다르게 즐길 수 있도록 4층짜리 건물에 수영장과 바를 완비한 ‘톱 골프’는 최근 가장 주목받는 골프 클럽. 사막에서 산맥을 배경으로 슈퍼카를 운전하며 레이싱을 즐길 수 있는 ‘스피드베가스’는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선사했다. 해 질 녘이면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중심지에 있는 대관람차 ‘하이 롤러’에 불이 켜진다.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높고 큰 대관람차로 등재된 곳에서 도시를 바라보면 지상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련하게 보이는 불빛과 사람들, 그리고 멀찍이 황량한 모래 들판까지, 동그란 상자 안에서 보는 세상은 멈춘 듯 천천히 움직였다. 


세상에는 고유한 캐릭터를 지닌 도시가 여럿 있다. 예를 들어, 낭만적인 파리, 젊은 예술가가 모여드는 베를린, 하나의 브랜드가 된 뉴욕 등이 그렇다. 라스베이거스는 사막 위에 지어진 신기루 같은 도시다. 수많은 영화에 배경으로 등장하고, 도시 자체가 하나의 소재로 쓰이는, 얘깃거리가 가득한 곳. 영화 <오션스 일레븐>, <나우 유 씨 미>에서는 밝고 휘황찬란한 관광 도시의 모습으로 비쳤다. 하지만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그려진 것처럼, 화려하지만 차가운 불빛이 주인공 벤과 세라의 감정과 뒤섞여 가슴 한구석을 때리던 도시이기도 하다. 그 먹먹한 무언가는 이전까지 이 도
시에 대해 가지고 있던 느낌이다. 세계적인 팝 스타의 정기 공연이 열리고, ‘태양의 서커스’ 무대가 펼쳐지는 곳. 우연치 않게 처음 발을 디딘 라스베이거스는 미지로의 여행에 대한 나의 욕구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으며,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정열적인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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