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이광호를 소개하는 첫 문장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L'OFFICIEL (이하 LO) 가장 최근 작업인 &lsquo;메종 에르메스 긴자 윈도 디스플레이 협업&rsquo; 이야기로 시작하겠다. 협업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이광호 지난해 9월 긴자 에르메스 윈도 프로젝트 담당자에게 연락을 받았다. 기쁘면서도 새로운 제안을 해야 했기에 부담감도 동시에 느꼈다.
LO 에르메스의 핸드크래프트 헤리티지, 긴자 스토어의 의의를 고려한다면 당신에게도 꽤 의미가 있을 듯하다. 완성된 결과물을 본 소감은? 이광호 사실 에르메스만큼이나 긴자 스토어 건물 자체가 매력이 있었기 때문에 건물 전체를 적극 활용하고 싶었다. 완성되기 전까지는 마무리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컸는데, 완성된 순간 안도감과 뿌듯함, 그리고처음 생각했던 구상이 실체화되었다는 기쁨이 동시에 느껴졌다.
LO 생애 처음으로 &lsquo;아티스트가 되어야겠다&rsquo;라고 결심한 순간을 기억하는가? 어린 시절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한 소년이었나? 이광호 아티스트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죽기 전까지 무언가를 창작하는 삶을 동경했던 것 같다.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한 유년 시절은 아니었지만 순간순간을 나만의 방식으로 즐겼던 것 같다. 돌아보면 특별한 삶은 아니었고 특별한 생각을 해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그때의 기억이나 경험들로 나의 지금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 평범함이 특별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아가며 작업하고 있다.
LO 2009년 밀라노 가구 박람회 때 펜디의 글로벌 프로젝트 부스에서 유일한 아시아 작가로 작품을 선보여 크게 주목받았다. 꽤 오래전 일이지만 회상한다면, 청년 예술가 이광호는 그때 어떤 감상을 품었나? 이광호 아마도 그때는 무언가를 직접 손으로 만든다는 것에 큰 점수를 받았던 것 같다. 그로 인해 나도 기대하지 않았던 일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무언가를 잘 만들어보고 싶다는 목표가 컸다.
LO 매듭 시리즈에서 PVC와 전선 같은 공업 재료를 손으로 꼬아 조명과 가구, 오브제를 만들었다. 공업 재료들이 처음 눈에 들어온 순간은? 이광호 당시에는 을지로 재료상가를 누비며 재료를 찾는 과정 자체를 즐겼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기에 자연에서 나온 재료를 이용해 작업하는 방식보다는 공업 재료로 나만의 방식을 찾고 특정한 형태를 만들어가는 그 여정 자체를 더 즐겼던 것 같다.
LO 핸드크래프트 방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광호 농부셨던 조부모의 영향이 크다. 도구를 직접 만들어 농사를 짓던 그 모습 때문인지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보는 것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흥미를 느꼈다.
LO 당신에게서 가에타노 페세가 연상되기도 한다. 추상적인 작품이 아니라 조명, 가구 등을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광호 조명이나 가구 등을 만들었던 이유는 작업의 시작과 끝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작업이 마무리되고 바로 앉거나 조명을 켜본다거나 하는 그 행위를 즐겼다.
LO 지금까지 글로벌 패션, 뷰티 브랜드와 다양한 협업을 선보였다. 패션과 아트의 협업에 대한 견해는? 이광호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서로 끌릴 수밖에 없는 요소가 너무 많기도 하고. 협업을 굳이 안 할 이유를 찾는 것이 더 어렵다고 본다.
LO 국내에서도 여러 스토어에서 당신의 작품을 마주치게 된다. 당신은 자신의 작품을 마주칠 때 어떤 기분이 드나? 이광호 다음번엔 이렇게 또는 저렇게 만들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LO 대작도 많다. 작품의 스케일에 대한 생각은? 이광호 스케일이 커질수록 보다 자유롭고 실험적인 접근이 가능해진다. 스케일이 작을수록 내 작업의 결정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케일로 내 작업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줄 수 있어서 특정한 스케일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LO 4월 30일까지 리안갤러리 서울과 대구에서 전시 &lt;Yesterday Is Tomorrow&gt;가 열렸다. 제목이 은유하는 바는? 이광호 어제는 내일이다. 오늘은 바로 나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어제로부터 시작된 나의 오늘로 인해 내일은 끊임없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LO 모든 창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광호 나 자신과의 대화.
LO 당신의 뇌구조를 그린다면 무엇이 각각 몇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을까? 이광호 음, 너무 어렵다. 큼직하게 자리하는 것들보다 1퍼센트, 2퍼센트, 3퍼센트 등 수많은 작은 것들로 나의 뇌가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상상을 좋아하는 것도 아마 이런 뇌 구조여서 그렇지 않을까.
LO 아티스트 이광호가 가장 자주 읊조리는 단어는? 이광호 증명해내는 것.
LO 당신에게 영감을 선사하는 사물은? 시간은? 공간은? 이광호 나는 매순간 영감을 얻는다. 친구에게서, 가족에게서, 아이들에게서, 길에서, 자연에서, 바다에서, 강아지에게서, 영화에서, 음악에서, 길 위에서, 나뭇잎에서 등등.
LO 아티스트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이광호 끊임없이 상상을 할 수 있어서 좋다. 하루하루 나를 더 알아가는 순간도 좋아한다.
LO 아티스트로서 가장 힘겨운 순간은? 이광호 지금까지는 어떠한 힘겨움조차 과정이기 때문에 따로 떼어내어 힘들어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LO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가슴속에 있겠지만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단 한 명을 꼽는다면? 이광호 데이비드 보위.
LO 아티스트로서 소개글은 매번 새롭게 쓰여야 한다. 지금은 첫 문장을 무엇이라고 쓰고 싶은가? 이광호 아직은 그 첫 문장을 써가고 있는 거 같다. 나를 가장 잘 소개할 수 있는 첫 문장을 쓰기 전까지 더 열심히 창작 활동해보려고 한다.
LO 예술, 창작 외에 애정하는 관심사가 있다면? 이광호 제주도로 이주한 지 3년이 되었다. 현재는 제주도에서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게 가장 큰 관심사다.
LO 아티스트로서의 &lsquo;궁극적 꿈&rsquo;을 이야기한다면? 이광호 네 번째 질문의 답처럼 죽기 전까지 창작 활동을 해보는 것.

LO 긴자 스토어 윈도우에서 에르메스의 아이콘 쉔당크르를 동화적으로 해석한 듯하다. 영감은 어디서 받았고 어떻게 디벨롭했나? 이광호 에르메스 100주년 기념이 주제였기에 에르메스의 여정을 시각화하고 싶었다.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며 수많은 닻을 내리는 배를 상상하면서 쉔당크르에 그 기록을 엮으려고 했다. 나의 작업이 손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가며 그 상상이 실체화되기 시작했다. 아래는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정리해봤던 글이다.

&lt;Anchoring 100 Years of Herm&egrave;s&gt; 드넓고 아름다운 바다. 이 바다를 100년 넘게 항해하고 있는 배. 그 이름은 FAUBOURG 24. 망망대해에 닻을 내린다. 그 닻에 연결되어 있는 형형색색의 체인들이 닻과 함께 깊은 바닷속에 던져지는 순간, 바닷속 구석구석 잠들어 있던 상상력은 닻과 함께 다양한 모습으로 바다 밖으로 건져지게 된다. 그 누구도 기록하지 못했던 새로운 바다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 외에도 아티스트 이광호의 전체 인터뷰가 담긴&nbsp;&lt;로피시엘&nbsp;YK&nbsp;에디션&gt; 2024년 서머 스페셜호는&nbsp;교보문고,&nbsp;예스24,&nbsp;알라딘 등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 가능하다.

Writer Ha Min Seung

첫 문장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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