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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칸 아메리칸 이민자였던 로베르토 힐 데 몬테스(Roberto Gil de Montes)는 특유의 관능미, 모험, 불확실성을 그림에 가득 담는다.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여름인 듯 푸른 바다와 정글을 배경으로 삼아 환상적인 현실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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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나는 세상에 초인적인 행복이란 없다는 것을, 하루 해의 곡선을 초월한 저 너머의 영원이란 없다는 것을 배운다. 이 덧없으나 근본적인 부(富), 이 상대적인 진실들만이 나를 감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이다.&rdquo; 여름이 오면 몇 번이고 카뮈를 읽는다. 손가락에 닿자마자 부서지는 포말, 내 숨과 섞이는 뜨거운 공기처럼 확실하고 물질적인 감각을 되살리려 애쓰며. 날카로운 언어로 몸의 기억을 깨운 뒤엔, 흩날리는 기억을 박제한 듯한 그림 앞에서 새로운 미지를 꿈꾼다. 1950년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 멕시코시티,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평생을 화가로 살아온 로베르토 힐 데 몬테스(Roberto Gil de Montes)는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즐겨 찾던 작은 마을에 아예 둥지를 틀었다. 보티첼리의 &lt;비너스의 탄생&gt;과 닮은 듯 전혀 다른 힐 데 몬테스의 &lt;El Pescador&gt;(2020)는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그림 중 하나였다. 거대한 조개껍질 안에 꽃과 책을 든 채 비스듬히 누운 구릿빛 피부의 젊은 어부. 힐 데 몬테스의 그림에는 검푸른 하늘과 바다, 초록빛 나무, 베일과 가면, 적당히 낡고 해진 삶이 담겨 있다. 이른 아침, 어부들의 낚싯배가 바다로 나설 때 그는 캔버스 앞에 앉는다. 일부러 아름답게 꾸미지 않은, 그럴듯한 무언가로 가장하지 않은, 다만 소란과 권태가 뒤섞인 그의 현실이 매일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다.

L'OFFICIEL (이하 LO) 사나운 겨울, 뉴욕에서 당신의 그림을 봤을 때 작품에서 느껴지는 열기, 습도, 느긋함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당신 인생에도 춥고 메마른 시절이 있었나? Roberto Gil de Montes (이하 RM) 춥고 황량했던 시기에 대한 기억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어렸을 때 일종의 외로움을 경험한 적은 있다. 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고 느끼곤 했거든. 혼자 있 는 시간이 많았고, 장난감으로 이야기를 만들며 놀곤 했다.
LO 당신의 소년 시절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RM 혼자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는 외로운 아이였다. 수녀들이 운영하는 가톨릭 학교에 다녔는데, 기도와 미사 참례가 필수였다. 나는 아기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다. 어떤 이야기에서 성배를 보관하는 닫힌 상자 안에 아기 예수가 있다고 하길래, 친구와 쉬는 시간에 그 상자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상자가 비어 있는 게 아닌가. 그 경험을 계기로 이야기들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LO 아티스트로서 평생 멈추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이었나? RM 나는 열세 살 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게 행복을 느끼는 유일한 활동이었다. 팬터그래프(도형을 확대 또는 축소하여 그릴 수 있는 제도기)를 하나 산 다음에 사진을 본떠 그려보기도 했다. 예술은 내 감정, 그리고 남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이 되었다. 그림 그리는 일을 멈춘 적이 없었고, 내가 좋아하면서 동시에 내게 자양분이 되는 일을 멈춘다는 것은 결코 선택지가 된 적이 없었다. 미술 학교를 졸업했을 때, 내 직업이 쉬운 일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상업 사진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대신 내 사진을 예술로 전환했다.

LO 이주와 이민의 경험이 당신의 예술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RM 어머니는 여름이 되면 우리 형제를 여러 곳으로 보내곤 하셨다. 그중에서도 멕시코시티가 제일 좋았다. 우리 집이 있던 과달라하라와는 너무 다른 곳이었다. 열세 살이 되던 때, 우리 가족이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는데 그때는 정말 힘든 시기였다. 영어도 못 했고, 멕시코에 있는 집과 친구들이 그리웠다. 내가 왜 다른 아이들과 다른지 깨달은 시기이기도 했다. 나는 남자아이들에게 끌렸다. 하지만 부모님께는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이 죄이자 금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흑인, 아시아인, 백인 등 다른 인종의 사람들을 접해본 적도 없을 때였다.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영어를 할 줄 몰랐고,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새 학교 복도에서 미술 교실을 발견하고, 그림 수업에 등록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민자로서 가장 강력한 경험은 멕시코의 역사적 상징물을 그림에 접목하면서 멕시코인으로서 자부심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었다.
LO 어쩐지 당신의 대답을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도시와 자연에서의 삶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하나? 그리고 그러한 삶의 선택이 당신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RM 도시도 좋아하지만 작은 마을을 선호한다. 멕시코 서부 나야리트에 위치한 라 페니타 데 할템바에 정착하기 전부터 수년 동안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 바다와 정글 그리고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편의시설이라곤 거의 없는 어부의 마을이었다. 처음 이곳에 머물렀을 때는 전화와 TV도 없을 정도였다. 우기가 되면 사람들은 바다, 정글, 개울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의식적으로 내 경험을 그림으로 그리겠다고 결심한 적은 없지만,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리기 시작한 것 같다.
LO 오랫동안 당신의 작업에 영향을 준 치카노(Chicano)나 후이촐(Huichol) 예술에 대한 개념은 한국 관객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이러한 레퍼런스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주겠나? RM 멕시칸 아메리칸 이민자 공동체를 가리키는 &lsquo;치카노&rsquo;라는 단어는 정치적 입장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우리 멕시코인은 많은 편견을 견뎌왔다. 1845년까지 미국 남서부의 상당 부분이 멕시코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은 멕시코인이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아프고 비극적인 역사다. 멕시코 서부 산악 지대의 선주민인 후이촐은 여전히 고유한 문화와 관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매우 자부심이 강하고 자율적이다. 수공예 자수로 지은 옷을 입고, 사막의 자생 식물이자 환각 효과가 있는 페요테 선인장을 섭취하는 의식을 치른다. 그들의 예술은 화려하고, 실을 활용해 그린 그림에는 종교적 내러티브를 묘사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LO 그동안 완성한 다양한 작품 중에서도 특히 즐겨 그린 주제는 무엇이었나? RM 주로 남성을 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며, 그게 사실이기도 하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내가 여성보다 남성을 더 잘 이해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긴 해도 내가 여성을 사랑하고 그들과 있을 때도 매우 편안하다는 것도 꼭 말해두어야 하겠다(웃음). 그냥 남성이 있는 환경과 남성을 그릴 뿐인데, 게이 아티스트라고 언급될 때는 놀라웠다. 항상 내가 다른 무엇이기에 앞서 그냥 예술가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크게 신경 쓰이는 건 아니고. 나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LO 작품 속 풍경은 분명 어딘가 있을 법한데 동시에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생경한 장소를 상상하게 한다. RM 내가 그리는 풍경은 현실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다. 다만 내가 기억을 바탕으로 그리기 때문에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야외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보다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쪽을 선호한다. 자연, 빛, 사람, 풍경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비단 경험뿐만 아니라 상상의 분위기까지 연출한다.
LO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작품의 주인공인가? 특정한 인물이나 장면의 완성에 목표를 두고 그리는 편인가? RM 내 그림 속 인물들에겐 나름의 역할이 있지만 전체 내러티브는 관람객에게 열려 있다. 그들이 직접 참여하고 자신만의 이해를 가져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특정 인물을 그리진 않는다. 그런 개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모델을 쓰긴 하는데, 주로 신체 비율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모델을 그리는 것도 즐겁고, 종종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는데, 정확하게 혹은 사실적으로 인물을 그리려고 집중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림을 그릴 때는 그 행위 자체와 현재에 머무는 것, 성장의 기회에 열려 있는 것에 집중하고자 한다.

LO 색을 선택하고 배치하는 기준도 있나? RM 나 자신을 직관적인 화가라고 생각한다. 색을 좋아하고,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색을 실험하는 것을 좋아한다. 원래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그림을 완성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우회하는 경우도 많다. 때로는 원래의 아이디어가 사라지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요소가 등장할 때를 좋아한다. 때로는 길을 잃고 그림을 멈춰야 할 때도 있다. 작품을 완성하는 데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그림이 내게 말을 걸고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다리는 것처럼 그림을 쉬게 하고 그냥 바라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한다.
LO 작품 시기와 상관없이 당신의 그림은 매우 젊게 느껴진다. 아마도 특유의 관능미, 모험, 불확실성 때 문인 것 같다. RM &lsquo;불확실성&rsquo;은 내 작업을 설명하기에 좋은 단어다. 우리는 매우 불확실한 세상에 살고 있다. 관능과 모험 또한 내 작업을 정의할 수 있다. 이민자로서 살아본 결과, 좋은점 중 하나는 집과 집 사이로, 한 장소나 한 나라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러 곳에서 살았던 기억이 너무 많아서 왠지 시간이 뒤틀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웠을지언정 이주의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LO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당신에 대해 세상이 꼭 알았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RM 대규모 사교 모임을 꺼린다. 특히 내가 관심의 중심이 되는 경우 불편함을 느낀다. 소규모 그룹, 가급적 오랜 친구들과의 모임을 더 좋아한다.
LO 좋아하는 여름 휴가지는 어디인가? RM 나는 지금 평소 휴가를 보내던 곳에서 살고 있다. 이곳에서 거주하겠다고 계획한 적은 없지만, 인간은 기분이 좋아지는 곳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에도 내가 사는 곳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려고 한다. 휴가를 갈 때는 주로 뉴욕, 샌프란시스코, 오악사카, 뉴멕시코, 인도, 스페인, 프랑스, 독일, 브라질, 페루, 멕시코시티, 네팔 등 꿈꿔왔던 곳으로 떠나곤 한다.
LO 혹시 이번 여름을 위한 특별한 계획이 있나? RM 올여름엔 아마 집에 머물 것 같다. 나는 몬순 시즌을 좋아한다. 폭풍이 지나간 후의 고요함, 허리케인이 다가오는 흥분, 폭포에서 수영하는 사람들, 열기와 습도, 사방에서 마주칠 맨몸들을 기대하고 있다.

Photographs courtesy of ARTIST, KURIMANZUTTO Editor Lee Ga Jin

언제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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