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박천휴를 위한 장면들.

제78회 토니상 주요 부문 6개 상을 수상한 뮤지컬 &lsquo;어쩌면 해피엔딩&rsquo;으로, 한국 창작 뮤지컬의 위상을 드높인 작가 박천휴를 &lt;로피시엘&gt;에서 만나봤습니다.&nbsp;

LO 와, 모델로서 이 정도 재능이 있을 줄이야. 가까이에서 보니 얼굴에 드라마가 있는 것 같다. PCH 좋게 봐주셨다니 감사하다. 희로애락이 좀 배어 있으려나(웃음). 
LO 평소 연기에 관심이 있었나? PCH 아니다. 대학교 때 문예 창작을 전공했고, 과에 희곡 쓰는 학생들이 매년 공연을 올리는 전통이 있었다. 여름방학 내내 연습하고 가을 학기에 공연을 하는데 한번은 남자 주인공이 없다고 내게 부탁하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극 무대에 올랐던 적이 있다. 그때 무대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 그 뒤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LO 즉석에서 의상이나 소품을 활용해 포즈를 취하는 게 쉽지 않은데 그럼 순발력이 좋은 건가? PCH 나는 항상 내가 좀 느린 편이라고 생각하는데&hellip;. LO 역시나 무대를 많이 보고 가까이에서 일한 경험에서 나오는 힘일까? PCH 그런 영향이 분명히 있을 거다. 어느덧 13년 넘게 공연 일을 해왔고, 배우들과 밀접하게 작업하는 직업이다 보니 무대 위에서 중압감을 느끼는 배우를 보면서 그게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봤다. 그런 경험이 화보 촬영에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일단 시작하기 전에 &lsquo;내가 여기에서 어색해하거나 쑥스러워하면 안 된다. 이 현장만큼은 내가 마치 공연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열심히 해야 현장의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rsquo;라고 되뇐다. 
LO 덕분에 촬영이 순조로웠고 결과물도 멋질 것 같다. 한발 늦은 듯하지만 다시 한번 토니상 수상을 축하한다. 이번 수상의 대의적 차원보다도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가 궁금하다. PCH 처음으로 생각해보는 것 같다. 상을 받기 전에도, 수상 후에도 너무 정신이 없어 차분하게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거든. 그런데 상을 받았다고 해서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나는 똑같은 사람이고 경력에 꽤 그럴싸한 한 줄이 추가됐을 뿐, 글을 쓴다는 건 조금도 쉬워지지 않고 공연을 만드는 것 또한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내게는 아주 근사한 칭찬, 그리고 지금까지 힘들었던 시간이 그렇게 의미 없는 게 아니라 해볼 만한 것이었다고 스스로에게 해주는 칭찬 같은 의미라고 정리하고 싶다.
 LO 그럼 박천휴의 인생에서 일어난 멋진 이벤트 중 순위로 따진다면 몇 번째 정도인가? PCH 글쎄. 톱 3 안에는 들어가지 않을까. LO 원 톱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PCH 윌 애런슨과 내가 &lt;어쩌면 해피엔딩&gt;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순간이 원 톱이다.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생각해냈을 때의 쾌감은 수상과 비교할 수 없다. LO &lsquo;마음에 쏙 드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rsquo;라는 느낌은 처음부터 있었나? PCH &lt;어쩌면 해피엔딩&gt;은 나와 윌이 쓴 첫 오리지널 스토리이고, 사실 아무 기대치도 없었다. 그보다는 이야기 자체가 자기를 써달라고 우리를 조종한 듯하다. 삶의 그 시절에 그 이야기를 꼭 써야 했고, 그래서 썼고, 그렇게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뮤지컬을 만든다는 건 소설을 쓰는 일과는 다르게 여러 사람이 같이 해야 하니 어느 순간부터 힘든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그래도 처음 대본과 음악을 쓸 때는 그냥 해야만 한다, 이걸 하고 싶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우리는 이걸 해야 한다는 느낌만 있었다. LO 두 사람이 함께라서 그 당연하다는 느낌이 더 단단했던 것일까? PCH 물론 그런 게 있었을 거다. 두 사람이라 멈추지 않았고, 한 명이 넘어지면 서로 일으켜주면서 빠르게 결승점에 도착했던 것 같다. 물론 의심이 고개를 드는 순간도 있었다. &lsquo;우리 이게 맞는 거야?&rsquo; 그때 그 의심이 너무 길어지지 않게 재빨리 다잡아주는 누군가가 함께한다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LO 당연히 쓸 수밖에 없었던 그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듣고 싶다. PCH 어느 날 카페에 앉아 있는데, 데이먼 알반(Damon Albarn)의 &lsquo;Everyday Robots&rsquo;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ldquo;우리는 매일 핸드폰을 바라보며 집으로 향하는 로봇들&rdquo;이란 가사로 시작하는 곡이다. 점점 고독해지는 현대인의 모습에서 로봇의 사랑 이야기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사실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은 &lsquo;한 소년이 한 소녀를 만났다&rsquo;로 시작할 것 같은 지극히 클래식하고 심플한 사랑 이야기였거든. 그걸 로봇을 통해 풀면 훨씬 더 솔직하게 쓸 수 있겠구나 싶었다. 우리 인간은 갈수록 너무 시니컬해지고,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면 외려 창피하게 여기는 시대니까. LO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팝송의 가사를 번역하면 직설적인 내용인데도 단지 영어란 이유로 더 달콤하게 들릴 때가 있다. 그저 언어만 달라졌을 뿐인데. PCH 맞다. 며칠 전 차를 타고 지나가다 &lsquo;시니어 플라자&rsquo;라고 쓰인 건물을 지나쳤다. 그걸 보면서 경로당이나 노인정이라고 부르던 곳을 왜 시니어 플라자라고 부르는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 한참 생각했다. 아마 비슷한 이야기 아닐까. 우리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나라의 말로 표현하면 똑같은 내용이라도 좀 다르게 들리고.
 LO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창작 뮤지컬을 미국에서 영어로 선보이면서 어쩔 수 없이 달라진 부분도 있을 것 같다. PCH 물론이다. 방금 얘기한 것처럼 언어마다 나름의 정서가 있으니까. 본질적으로는 같은 얘기이고, 같은 멜랑콜리와 유머 감각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언어에 맞춰 조금씩 수정한 부분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번역을 맡기지 않고 내가 영어와 한국어로 대본을 작업한 덕분에 말맛의 차이를 살릴 수 있어 행운이라고 느낀다. 그냥 번역을 맡겼다면 조금씩 다른 뉘앙스를 캐치하기 어려웠을 거다. LO 브로드웨이 버전에서도 꼭 살리려고 노력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PCH 영어에서 &lsquo;Subtle&rsquo;, &lsquo;Subtlety&rsquo;라는 단어는 &lsquo;미묘한&rsquo;, &lsquo;오묘함&rsquo;이란 뜻이다. 윌과 나의 유머 감각은 박장대소는 아니고 피식, 후훗 웃게 하는 좀 미묘한 종류다. 그런 유머가 미국 정서에서 늘 환영받는 건 아니다. 예전에 읽은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당시 그는 아내인 소피아 코폴라 감독과 이혼을 앞둔 시기였다. 이때 인터뷰에서 그는 코폴라를 일컬어 &ldquo;그녀는 서틀함을 아는 여자&rdquo;이고 &ldquo;그게 가장 세련된 거라고 생각한다&rdquo;라고 상찬했는데 그 말에 너무 공감했다. 나 또한 살짝 오묘하고 은근한 것이 더 매력 있다고 생각하고, &lt;어쩌면 해피엔딩&gt;의 미국 버전에서도 그런 은근한 웃음기를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LO 여러 인터뷰에서 &ldquo;윌 애런슨을 만나는 데 인생의 가장 큰 운을 쓴 것 같다&rdquo;고 거듭 말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이 발휘하는 케미스트리의 핵심은 무엇일까? PCH 일단 인생의 가치관 혹은 살아가는 방식이 좀 비슷하다. 둘 다 대충 넘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남을 못살게 구는 건 아니다(웃음), 우리 둘 다 레스토랑에서 무언가를 물어보는 걸 겁내고, 필요한 게 있어도 말을 잘 못 하는 성격이다. LO 뮤지컬은 두 사람 외에도 여러 스태프와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일이다. 그간 충분히 좋은 스태프를 만났나? PCH 얼마 전에 박진주 배우가 내게 인복이 엄청 많은 사람 같다더라.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고, 좋은 사람이 계속 조력자로 나타나는 굉장한 행운아라고. 왜 그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정말 인복이 많은 것 같긴 하다. LO 브로드웨이의 스태프나 시스템은 어땠나? PCH 확실히 역사가 길고 규모가 커서 전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순간순간 느껴졌다. 가령, 배우 조합이나 스태프 조합만 해도 반세기 넘는 시스템이니까. 대신 그런 구체적인 시스템 때문에 뭔가 역동적으로 빠르게, 재미있게 새로운 걸 만들기엔 너무 어려운 시장 같기도 하다. 그게 참 역설적이다. 한편으론 그런 아이러니가 인생 대부분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 
LO 어떤 유형의 창작자를 좋아하나? PCH 욕심이 많은 사람. 일종의 야심이 있는, &lsquo;자신만의 마크를 새기고 싶구나&rsquo; 하는, 개성이 느껴지는 사람에게 아무래도 제일 끌린다. LO 작가님은 본인의 마크를 새겼다고 생각하나? PCH 아주아주 미묘한, 아주아주 은은한 마크 하나 정도? 아주 강렬한 마크를 찍고 싶은지도 사실 모르겠다. 나는 큰 소리로 무언가를 고래고래 외치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드러내는 성격은 아닌 듯하다. LO 때로는 어떤 분야에서 경력이 쌓일수록 감상자나 관객으로서 순수한 기쁨을 누리기가 더 힘들어지기도 한다. PCH 브로드웨이의 구성원이 되면서 여러 행사나 다른 분이 만든 공연의 오프닝 같은 데 초대받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 곳에서는 여전히 순수한 기쁨이 느껴진다. 물론 너무 많은 것이 보여서 힘든 것도 있지만, 산업적인 부분 외에 무언가를 만들었을 때의 성취감 등을 함께 나누는 업계에 있다는 게 참 좋다. 공연업계엔 아직도 공동체 의식이 있거든. 그래서 다른 사람의 오프닝 나이트에 가서도 순수하게 서로 축하해주는 문화가 있다. 작업 과정을 이야기하고, 만들면서 힘들었던 것도 나누면서 축하하고. 그런 시간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LO 작가라는 직업도 그렇고, 뉴욕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소속감을 느끼기가 쉽진 않을 듯하다. PCH 어제 한강공원을 달리면서 아주머니 열 분 정도가 모자와 의상을 똑같이 맞춰 입고 줄지어 사이클을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봤다. 자전거는 철저하게 혼자 타는 것이지 않나. 단 한 명을 위해 만들어진 기구를 왜 옷까지 맞춰 입고 저렇게 한 줄로 달릴까 생각하다가 &lsquo;그래, 이게 우리 인간의 본질이지&rsquo; 싶었다. 그런데 나는 기본적으로 독립적인 인간인 것 같다. 스스로 고독을 선택하고, 나름 즐기는 편이기까지 한. LO 마지막으로, 그 어떤 자리에서도 밝힌 적 없는 박천휴의 &lsquo;말할 수 있는 작은 비밀&rsquo; 한 가지만 알려달라. PCH 한국에서는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닌데, 미국 사람은 혼잣말하는 걸 괴상하게 여긴다. 한국에서처럼 혼자 중얼거리면 마치 미친 사람 보듯 하기 때문에 내가 집에서 혼잣말을 많이 하는 것을 친구들에겐 숨기려고 한다. 그렇지만 사실 나 스스로도 걱정될 정도로 집에 있을 때 혼자 엄청 많이 중얼거린다. LO 혼잣말로 대화도 하나?(웃음) PCH 주고받는 것까진 아닌데 &lsquo;진짜 너 왜 이러니?&rsquo;, &lsquo;이러지 않기로 했잖아&rsquo; 정도의 대화는 한다. 미국 친구들이 이걸 알면 나더러 미쳤다고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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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Woo Lee, Bae Si Hyun Photographer Kim Min Ju Stylist Kim Shin Hye(Intrend) Set stylist Lee Da Young Hair &amp; makeup Ryu Zi Yeon Assistant Jeong Daun(In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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