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me

백 투 더 퓨처!

가방이 가방이 아닐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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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비가 내리지 않는 이상 항상 가방을 들고 현관을 나선다.

언제부터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으나 버릇보다는 잦고 습관보다는 낯선 행동이니만큼 대충 집착이라고 둘러댈까 싶다. 짐이라고 해봤자 겨우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지갑, 어쩌다 한 번 뿌리는 향수, 한 달도 채 못 쓰고 잃어버리는 립밤 그리고 휴대전화 정도. 사실 휴대전화는 손에서 떠날 일이 거의 없기에 가방에 들어갈 기회 또한 없다. 그러니 굳이 따지고 들자면 가방을 드는 이유는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 하나의 연출인 셈. 어쩌다 사이즈가 큰 가방을 들고 싶은 날에는 찬밥 신세가 된 낡은 티셔츠몇 장을 냉큼 구겨 넣어 늙은 호박 비스름한 모양새를 만든다. ‘위시 리스트’라는 가상의 행복 공간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가방이요, 계절의 변화나 시시한 기념일을 핑계 삼아 메고, 들고, 두를 수 있는 온갖 것과 씨름하는것 역시 가방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남자에게 가방은 3순위 언저리에 위치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 없을 수만 있다면 한없이 자유로울 성가신 존재라 생각했다. 제 몸보다 크게 늘어진 백팩을 메고 등교하는 학생, 서류 뭉치로 만든 폭탄이라도 나르듯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던지는 회사원, 여자 친구의 손 대신 가방 손잡이를 붙들고 멋쩍은 시선을 비치는 남자의 전유물이라고 말이다. 숄더백은 옷의 형태를 망치니 싫고, 토트백은 한 손의 자유를 포기해야 하기에 애당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너 나 할 것 없이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 ‘십중팔구’라 불리던 네모난 가죽 클러치 백도 어느 순간 여동생의 차지가 되었으니, 가방이라는 존재의 유무를 잊지 않은 것만으로도 스스로 신통하다.


철옹성 같던 고집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매 시즌 눈에 띄게 달라지는 컬렉션의 변화에 자연스럽게 동화된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모델의 어설픈 워킹을 감춰줄 구세주가 되어주거나 스타일링을 위한 쇼피스로 치부되던 가방이 어느 순간 런웨이의 어엿한 주연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일등 공신을 꼽자면 바로 메신저 백의 부활이 다. 약속이라도 한 듯 할리우드 스타들이 세기말을 떠올리게 하는 히프 색을 둘러메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컬렉션에서도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복고라는 패러다임 안에서 ‘일수 가방’이라는 놀림 섞인 우스갯소리는 여전 하지만 숨어서 듣는 여자 아이돌 그룹의 애교 섞인 노래처럼 모두가 가슴에 하나쯤 품어본 것은 분명하다.


아래 슬라이드를 넘겨보라

언젠가부터 우리는 반듯한 플란넬 수트나 값비싼 캐시미어 스웨터를 입고 다소 유치할 법한 짤막한 길이의 가방을 스스럼없이 착용한다. 룩이 심심하다 싶으면 화려한 컬러나 나일론, 악어가죽 같은 과감한 소재로 포인트를 준다. ‘초미니’라는 극단적 수식어까지 붙여야 할 만큼 작아진 사이즈를 보면 본래의 기능성을 넘어선 스타일링의 가능성에 결국 설득된다. 어깨에 메도 모자랄 만큼 커다란 가방을 무심하게 손에 움켜쥐거나 누군가가 애써 만든 고운 레더 토트백을 구겨 들기도 한다. 스트랩이 가슴에 하나, 허리에 하나 자리하도록 디자인된 가방의 경우 기존의 룩을 절개한 듯한 극적인 효과를 낸다. 재킷의 늠름한 라펠 사이에 앙증맞게 자리한 미니 백 역시 설명이 필요 없는 매력적인 포인트다. 과연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투박해도 좋고 과하다 싶을 만큼 화려해도 좋다. 잘 차려입은 룩에 조금은 어색하다고 느껴지는 가방을 무심히 메고, 들고, 둘러보자. 물론 가방이 아닌 내 맘대로 변형과 응용이 가능한 하나의 아이템으로 말이다. 백팩이라고 무조건 등에 메거나 토트백이라고 반드시 손에 들 필요는 없다. 이번 시즌 새로운 가방들은 네크리스나 벨트 같은 액세서리가 되거나 본래 룩에는 없던 포켓이 되어 자신에게는 흥미를, 보는 이에게는 재미를 가져다준다. 그리고 우리는 깨닫는다. 역시 세상은 든든한 ‘백’ 하나면 두려울 게없다는 것을. 가방이 가방이 아닌 순간, 오랜 고정관념을 초월한 새로운 시대와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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